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남해회사 거품 사태 (문단 편집) === 거품 붕괴 === 그러나 무한히 부푸는 풍선이 없는 것처럼 남해회사의 광풍 같은 투자도 그 끝으로 치달았다. 남해회사가 엄청난 이득을 보자 다른 이들도 '''우리도 주식으로 돈 못 벌 거 뭐냐'''라면서 정부 허가도 안 받고 불법으로 주식을 발행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시중에 주식 공급이 마구 넘쳐났고 당연히 '''주가는 떨어지기 시작했다.''' 상황이 안 좋다고 느낀 영국 정부는 서둘러 [[1720년]] 6월 24일에 "거품 방지법"을 제정하고 무허가 주식회사들을 단속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것 자체가 '''[[페이크다 이 병신들아|뻥이었다]].''' 남해회사는 무허가 주식회사들로 인해 주가가 떨어지자 주가를 다시 높이기 위해서 의원들에게는 로비를 했고 한편으로는 스페인과 조약을 맺어 남미 주요 항구에 대한 통상권을 확보했다는 소문을 [[주가조작|퍼트렸다]]. 심지어 은이 철만큼 많이 생산된다는 남미의 [[포토시]](Potosi) 은 광산의 운영권을 남해회사가 따냈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정상적으로 보면 스페인과의 통상 조약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스페인이 자국 경제의 중요한 젖줄 중 하나인 포토시 은광의 운영권을 영국 회사 따위에게 줄 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소문이 신빙성있게 나돌았다는 자체가 당시 사람들의 탐욕어린 광기를 보여주는 주요한 사례가 된다.[* 사실 [[고종(대한제국)|고종]]이 [[운산군|운산]] 금광의 채굴권을 외국인에게 넘겼던 등의 사례를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이건 고종이 망국 직전인 1890년대에 어떻게든 외국 세력을 끌어들여 보겠다고 한 일이다. 1700년대의 스페인은 [[카를 5세]], [[펠리페 2세]]의 시대만큼은 아니었지만 [[보르본 왕조]]의 노력으로 상당히 국가적 안정을 찾으며 중흥을 맞이한 시기였다. 포토시와 같은 중요한 광산을 다른 나라 사람에게, 그것도 역사적으로 사이가 안 좋은 영국의 회사에게 구한말 조선마냥 가져다 바칠 이유가 하등 없었다. 게다가 이 때는 [[중상주의]]가 판을 치던 시기였는데 중상주의의 핵심인 금, 은 채굴을 경쟁국에게 내 줄 리가 없었다.] 시장에서 남해회사의 주가가 오르자 의회는 1720년 4월 남해회사가 제안한 법률을 통과시킬 수 밖에 없었는데 그들 중에서도 주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았고 만약 주가가 더 오르면 남해회사의 주식과 국채의 교환비율이 떨어져서 정부가 손해를 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주식이 주당 1,000파운드라는 가격을 찍을 수 있었다. 정부관료들은 주식이 오를대로 오르자 주식을 팔아치우기 시작했다. 정부관료들이 팔아치운다는 소문이 들리자 남해회사 주식은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그간 남해회사의 허풍으로 오르던 주식이 남해회사의 사업 이득이 별로 없다는 의심이 커지고 소문이 거짓으로 밝혀지자 사람들은 이제 앞다투어 팔자로 돌아섰다. 결국 9월 주가는 주당 150파운드까지 떨어지기에 이르렀으며 12월에는 124파운드까지 주저앉았다. 결국 엄청난 손해를 보고 파산한 투자자들이 영국 정부에 거세게 항의했고 정부가 조사를 벌여 남해회사에서 뇌물을 받고 내부 정보를 제공받아 주식을 매도한 정부 관료들을 쳐내야 했다. 고점에서 남해회사 주식을 팔아 90만 파운드라는 거액을 챙겼던 재무부 장관은 [[런던 탑]]에 수감되어야 했고 당시 수상이었던 스턴호프는 국민들의 빗발치던 비난에 수상 자리에서 물러났으며 며칠 뒤에 급사하고 말았다고 한다. 이 사건으로 영국 경제도 타격을 심하게 받았는데 거품 방지법으로 회사 설립에 까다로운 제약이 가해졌고 투자를 선동한 자의 재산을 몰수한 이후 영국의 자본 형성이 크게 둔화했다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영국은 이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었는데, 때마침 이루어진 신대륙 개척과 신기술, 학문의 발달 덕분이었다. 당시 영국 주식시장의 규모가 약 5억 파운드로 추정되는데 이는 국내총생산의 약 7배에 달하는 규모였다. 현대의 미국 주식시장의 규모가 국내총생산의 2배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사건의 버블이 얼마나 심했는지 알 수 있다.[* 참고로 투자의 신으로 불리는 [[워렌 버핏]]은 주식시장의 규모가 해당 국가의 국내총생산을 넘어서면 버블의 징조로 보는데 상당수 금융권 관계자들도 이 견해에 동의한다. 다만 미국은 세계 경제의 중심이자 패권국가로 전세계의 자본을 블랙홀처럼으로 빨아들이기 때문에 예외로 보고 나머지 국가들의 경우 아무리 돈이 많이 풀려도 시가총액이 국내총생산을 약간 넘어서는 수준이지 몇 배가 되는 사례는 거의 없다. 이 시절 영국의 7배라는건 정말 미친 버블이었던 것.] 그러나 소수나마 이득을 본 사람들도 있다. [[조지 프레드릭 헨델]]은 남해회사 주식을 잘 팔아서 그 수익으로 왕립 음악 아카데미를 설립해서 자기 베이스로 잘 써먹었다. 그리고 훗날 영국 수상에 오르는 [[윈스턴 처칠]]의 9대조 할머니이자 당대의 영웅이었던 영국 육군 총사령관 [[존 처칠]]의 아내, [[사라 제닝스|사라 처칠]][* 2018년 영화 [[더 페이버릿]]에서 [[레이첼 바이스]]가 연기한 '말버러 공작부인' 사라가 바로 이 사라 처칠이다.]은 남해회사 버블 시기에 주식투자로 무려 10만 파운드[* 2017년 3월 기준으로 한화로 환산하면 1억 4,285만 7,143원이지만 300년 전 값어치로는 100억 원 정도 된다.]를 벌었다고 한다. 사실 [[제로섬 게임|제로섬 법칙]]이 어느 정도나마 적용되는 분야라서 다수가 잃은 손해만큼 누군가는 이득을 얻게 된다. 물론 이런 버블 붕괴 사건은 사회적 혼란, 경제시장의 경직, 줄도산 등을 거의 반드시 수반하기 때문에 어지간해선 사회적 후생 손실이 그 와중에 얻는 개인의 이득보다 더 클 수밖에 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